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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초유의 정부24 서비스 중단 사태에 대한 IT노조의 입장

IT산업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정부24 서비스가 중단됐다. 연간 1억5천3백만 건 이상의 민원 서류를 발급하고 7천5백만 건 이상의 열람 민원을 처리(행정안전부, 2022년 기준*)하던, 세계 최고 수준을 자임하는 초대형 국가 행정 민원 시스템이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멈춰서버린 것이다.

 

* 정부24 서비스 현황 https://www.index.go.kr/unity/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026

 

말그대로 사상 초유의 사태다. 피해의 종류와 규모가 가늠하기 어려울 수준임에도, ‘네트워크 장비 오류’라는 매우 무책임하고 쉬운 변명으로 사태를 얼버무리려 하는 정부의 태도에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하 ‘IT노조’)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불과 일 년전의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에서 우리는 비상시 대비를 소홀히한 결과를 경험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도 비상시 대비를 소홀히 한 점에 있다는 면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다.

 

11월 17일 금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행정안전부 전산망 장애는 복구작업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다. 시스템은 결국 오후 2시 경 완전히 멈춰섰다. 장애 발생으로 복구 작업이 시작된 지 6시간이 넘도록 사태의 원인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상황 발생 10시간이 지나던 오후 8시에는 국가정보원에서 북한 해킹 가능성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미 당일 오후 5시 경 일부 언론에서 L4 스위치 문제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었다. IT노조는 본 사태의 심각성의 문제를 언급하기 이전에, IT 대참사 사태의 원인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도 국가정보기관이 북한 해킹이라는 중대한 가능성을 사실 근거 없이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매우 큰 수치와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점을 먼저 확인한다.

 

* [지디넷코리아] 행정전산망 마비…국가정보원, 원인 파악 중(11.17 19:44)

https://zdnet.co.kr/view/?no=20231117192206

 

거듭되는 재난 상황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2022년 이태원 참사에서 단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을 넘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후퇴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정부는 정확한 원인 파악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라는 재난 발생 대응의 기초를  언제까지 외면한 채 남탓으로 떠넘기기에만 열중할 셈인가.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은 그 규모에 맞게 철저한 비상시 대응 매뉴얼과 매뉴얼에 따른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상황이 발생한 지 4시간 만에 정부24 서비스를 중단하면서도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매뉴얼이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원인 파악에 있어서도 GPKI 인증 시스템 문제로 이야기하다가 이후에야 GPKI 시스템이 아닌 L4 스위치 문제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비상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대응 체계가 존재한다면 이런 혼선은 발생할 수 없는 만큼, 정부 내 비상 대응 시스템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축되고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당연히 문제 해결 방식도 주먹구구였으리라 예상할 수밖에 없다.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모른 채 주먹구구로 원상복구(롤백)하거나 교체하는 방식을 통해 우연히 상황이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발을 구르는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긴급 정상화가 되었다고 하는 지금에서도 정확히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탓에 ‘장비를 교체해서 해결했다’고 발표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전자정부의 심장박동이 수일간 멈췄는데 원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채로  부품 하나를 교체하고나니 박동이 돌어오더라는 발표가 과연 누구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신경망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 같은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행정 민원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조차 파악이 불가능한 탓에 문제 원인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국민과 국내 거주 외국인을 포함한 5천2백만을 넘는 민원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그 시스템을 안심하며 믿고 사용할 수 있겠는가.

 

현재 정부가 내놓고 있는 ‘네트워크 장비 오류’라는 원인 진단은 언뜻 별 문제없이 들리지만,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투입되었을 네트워크 장비가 왜 갑자기 오류를 발생시켰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아무것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해명으로 입막음하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는 점에서 몹시 실망스럽다.

 

모든 IT시스템 설계에서 장비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고려 사항이다. 일부에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 문제 없이 시스템이 동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엔지니어링이 있고, 현 시대의 엔지니어링으로도 막을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면 사태의 발단에서 끝까지 속속들이 밝혀 학계에서 연구를 하도록 할 일이다.

 

정부는 사태가 발생한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매우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개하고 알려야 한다. 전문적인 내용이라고 덮어 둘 일이 아니다. 73만 명의 IT 노동자*는 정확한 설명을 듣고 이해할 충분한 지식과 판단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

 

* 국제노동기구, 2020년 기준 https://www.consumer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638

 

우리 IT노조는 이번 정부24 먹통 사태의 원인이 이미 예견 가능한 범위에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정에 대부분의 IT노동자가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원인을 단순히 네트워크 장비의 문제로 돌림으로써 다시 한 번 ‘역대급’ 무책임의 역사가 갱신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IT노조는 정부 발주 IT 프로젝트에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하도급 구조가 현 사태에 간접적이나마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 주시하고 있다. 한국 IT산업의 고질병인 하도급 구조로 인해 IT장비와 IT노동자에게 온전히 투입되어야 할 예산이 하도급 업자의 주머니만 불리고 마는 문제는 이미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하며 한국 IT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이러한 구조적 병패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없는 만큼 이 점 역시 명확히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국가 정지에 버금가는 본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 반드시 철저한 조사와 감사 등이 필요하다.

 

우리 IT노조는 앞으로도 계속 정부24 서비스 중단 사태의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주시할 것이다. 지난 세기,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잇따라 붕괴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수많은 목숨을 잃으며 비탄 속에서 배워야 했다. 카카오 서비스 중단 사태와 정부24 서비스 중단 사태가 IT산업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해결되지 않는 한 언제 다시 정부24 서비스가 갑자기 멈춰서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의 이와같은 대형 참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만시지탄이나마 여기에서 배우고 고쳐야 한다. IT노조는 이번 정부24 서비스 중단 사태로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함과 동시에, 한국 IT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철저한 원인 파악과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이 이번을 기회로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2023년 11월 20일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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