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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00시간 노동, 21세기의 노예


최OO/IT산업노조 위원장


“컴퓨터 프로그래머”
대체로 영어로 된 이름의 직업은 사람에게 전문가와 지식인의 느낌, 그리고,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의 느낌을 준다. 밤 늦은 시간, 서울의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빌딩 사무실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혼자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작업을 하는,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직업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개발자”라고 부른다.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그 중에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 핸드폰에 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은행창구처럼 기업내부에서 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지금 이
글을 쓰는 문서편집기를 만드는 사람 등이 있다. 어쩌면 좋은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하는 사람이
한둘쯤은 있겠지만, 80프로 정도의 개발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근무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보통 6개월 정도의 계약을 용역회사와 맺고, 원청회사에 파견되어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끝나기 때문에 개발을 할 장소도 임시로
마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경우에는 창고에 들어가서 컴퓨터 전선을 직접 깔고, 사무실
칸막이도 직접 설치하고, 책상 옮겨 놓고, 우리가 일할 공간을 우리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다행히 사무실이 있는 경우라도 옆 사람과 의자가 붙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로그램 개발은 컴퓨터와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므로, 개발자들이 더 오래
일을 할수록 개발 일정은 더욱 빨라지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개발 일정은 개발자들이 매일
야근을 하는 것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야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개발자들의 평균연령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 사이가 가장 많다. 40대면 거의 정년퇴직 할
나이라고 보면 된다. 왜 이렇게 정년이 빠른 걸까? 그건 관리자들이 개발자들에게 야근 수당 없는
강제 야근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나이가 어릴수록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능력은
개발자들을 얼마나 늦은 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리자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나이 어리고 체력 좋은 젊은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개발자는 보통 20-
30대가 70프로 이상이며, 그 중에 남자들이 9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


프로젝트 중간에는 관리자의 지시로 근무시간이, 평일은 저녁10시 퇴근, 주말도 출근으로
바뀐다. 저녁10시 이전에 퇴근 할 때는 관리자에게 퇴근 사유를 보고해야 되며, 주말에 출근이
힘든 경우에는 일요일에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더 바빠지게 되면, 퇴근은 새벽에 하게 되며,
토요일, 일요일은 당연히 모두 출근하게 된다. 물론 야근비는 없고, 새벽에 퇴근 할 때는 교통비도
자기 돈으로 내야 한다. 심지어 저녁 밥값도 자기 돈으로 사먹으며 일하는 개발자도 있다.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주당 평균 근무시간이 55.9시간으로 나왔다.
거기에 집에 가서 일한 시간이 주당 5.8시간으로, 한 주당 일한 시간을 모두 계산하면 평균
60시간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평균이라는 것이다. 한 주당 80시간 이상을
일하는 개발자는 15프로나 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안 쉬고,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사람이 그 정도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발자는 아프다.
야근으로 인한 수면부족과 휴식부족으로 80프로 이상이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오랜 시간
의자에서 움직이지 않아서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개발자가 80프로 가까이 되며, 거북목
증후군이 73프로, 심한 스트레스성 질환이 70프로 정도로 조사 되었다. 개발자들이 젊기 때문에
걷보기는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목과
허리에 오는 통증을 견디고 있다.


몇 달 전 금융업 전산 자회사에서 근무하던 개발자 한 분이 월 500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으로
몸이 망가져 폐의 한 부분을 절제하고, 회사에 산업재해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
직원이 컴퓨터 앞에서 놀았는지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고, 전산 상으로는 하루 두 시간 이상의
야근이 신청되지 않으므로, 산업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사람이 월 500시간의 일을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함께 일했던 사람이 증언을 했지만, 실제
증거를 대라고 할 뿐,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도 새벽 4시에 퇴근해서 아침9시에 출근하는
짓을 반년이 넘도록 했었다. 그래서, 월 500시간이라는 노동시간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안다.
이렇게 돈도 안받고 열심히 야근하다가 몸이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병원을 드나들게 되고,
결국은 프로젝트 중간에 일을 그만둔다고 관리자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프로젝트 중간에
개발자가 일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회사가 입은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협박을 하며,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계속 일 할 것을 요구한다. 발목에 보이지 않는 사슬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회사를 그만두면, 그 손해배상 비용으로 마지막 달 월급을 사장이 떼먹는다.
개발자들은 고스란히 월급을 떼이거나, 몇 달에 걸쳐 일부만 겨우 받아내고 이내 포기해 버린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때문에 노동자로서 인정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처음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한때, 어린
아이에게 꿈을 물어보면 “프로그래머”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IMF이후, 한국을 다시
일으켰고, IT혁명이라고 까지 불리는 산업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개발자”라는
이름의 “노예”로서 살아가고 있다.

IT혁명은 개발자의 삶을 모조리 빼앗아 성장의 밑거름으로 쓰고, 껍데기는 가차없이 버렸다.
올해가 노동절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하지만, 120년 전과 오늘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하루 여덟 시간만 일하고 싶다. 아마 그것은 우리 개발자를 포함한 이 나라의 모든
노동자들의 소망일 것이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에 기대기 보다는, 노동자 스스로가
맞서 싸워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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