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16기 서울지역 노동자 통일선봉대 참가 후기

by cw posted Jul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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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창원입니다.

지난 7월 23일, 24일, 1박2일 간 진행된 <서울지역 노동자 통일선봉대>에 민주노총 단위에 참가한 후기를 남깁니다.

 

글과 사진이 많습니다. 결론과 소감을 보시려면 마지막 문단을 봐주세요.

 

 

<차례>

통일선봉대란?

23일 9시, 전쟁기념관 앞으로 집결하다

23일 10시, 발대식으로 선봉대 시작을 알리다

23일 12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다

23일 14시, 조국통일 촉진대회에 참가하다

23일 17시, 조선일보 규탄투쟁을 하다

23일 19시, 평화의소녀상 앞 평화 촛불에 참여하다

23일 21시, <서울지통대> 단결의 밤

24일 10시, ‘효순미선평화공원’까지 행진하고 답사하다

24일 13시, 캠프모빌 둘레 행진 후 해단식

마치며 : 분단체제와 노동착취, 자본주의의 두 얼굴

 

 

통일선봉대란?

통일선봉대는 1988년, 남북한 청년학생 간 합의된 ‘6·10 남북 청년학생회담’을 노태우정권은 폭력적으로 저지하였고, 이에 저항하는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의 투쟁 대열이 그 기원입니다.(참고)

이후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온 통일선봉대는 여러 투쟁에 걸쳐 통일운동, 민족운동, 노동운동, 민중운동, 반전평화운동, 반미반제투쟁 등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의 7박8일 <중앙통일선봉대>가 유명하고, 제가 다녀온 1박2일 <지역통일선봉대>는 그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지역 노동자 통일선봉대>(이하 <서울지통대>)의 투쟁목표는 다음과 같이 설정되었으며, 1박2일 일정에 걸쳐 다양한 실천 활동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또한 이번 <서울지통대>에는 양일 간 하루에 270여명 정도가 참여하는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 불평등한 한미동맹 폐기를 중심으로 반미자주 투쟁 전개
  • 세균실험실, 기지오염, 한미소파 등 미군문제 심각성 폭로하고, 미군철수의 대중적 여론 형성
  •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
  • 대북 적대정책 폐기, 한미연합군사연습 저지
  • 반통일,반평화 윤석열정권 규탄, 남북합의 이행투쟁

 

 

 

23일 9시, 전쟁기념관 앞으로 집결하다

첫째날 아침, 용산 전쟁기념관 앞으로 모여 조원들을 만났습니다.

통일선봉대에서는 참가자가 조를 이루어 활동에 함께하게 됩니다.

제가 속한 조는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중심으로 여러 노동조합 동지들이 뭉친 조입니다.

참가자들은 모자와 조끼를 지급받아 사용하고, 해산할 때 반납합니다.

 

조원 간 인사를 나누고 조 이름을 정하였습니다.(조이름이 ‘운수대통’ 조로 결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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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0시, 발대식으로 선봉대 시작을 알리다

집결했던 전쟁기념관 앞에서 집회 대형으로 모여 통일선봉대 발대식을 진행하였습니다. (학교로 치면 일종의 입학식과 같습니다.)

 

약 200여명의 대원들이 민중의례, (대통령 집무실 방향으로) 구호 외치기, 노래 부르기, 율동 배우기 등을 포함한 발대식 프로그램을 기세있게 진행하였고, 대통령집무실과 미군기지를 향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한미일 군사훈련을 중단할 것을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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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2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다

발대식이 끝나고 점심 식사를 한 뒤에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선전전은 용산 인근 20개 장소에 흩어져서 12시부터 2시간 정도, 유인물 배포, 피켓팅, 현수막 게시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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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4시, 조국통일 촉진대회에 참가하다

오후에는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제5차 '조국통일 촉진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대회는 집회와 행진으로 이루어졌고, 이 자리에서 정보경제연맹 동지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국통일촉진대회는 남,북,해외단체,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농, 빈민, 노점상 등 각 계급계층의 민중의 민족통일과 반미반제 요구를 담는 대중적, 지속적, 상설적인 대회입니다.

많은 발언과 공연이 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하나를 꼽는다면 민주노련 노량진수산시장 동지들이 부른 ‘민중의노래’가 기억에 남습니다. 공연에 앞서 영상에서 볼 수 있었던 노량진수산시장의 철거 당시 상인들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과 그에 맞선 투쟁은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또한 영상에 이어 투쟁가를 부르는 민주노련 동지들이 투쟁을 딛고 일어선 모습 같아서 마음에 남았습니다.

 

자세한 대회 영상은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제5차 조국통일 촉진대회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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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7시, 조선일보 규탄투쟁을 하다

집회와 행진이 끝날 무렵 오후 늦게는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해서 우비를 지급받았습니다.

 

다음 일정으로는 지하철을 타고 조선일보 앞으로 이동해서 ‘조선일보 폐간 촉구대회’를 진행했습니다. 구호는 “언론적폐! 친일적폐! 반평화! 반통일!”로, 집회는 규탄발언과 노래부르기, 출입금지 띠 잇기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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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19시, 평화의소녀상 앞 평화 촛불에 참여하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째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이곳은 꽤 긴 시간 동안 극우보수단체가 맞불집회을 벌일 때마다 충돌이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침 이날도 극우단체가 맞불집회를 하면서 지나

 

가는 통선대원들에게 한마디씩 시비를 걸고, 스피커 소리로 집회를 방해했습니다.(아래 사진에서는 집회 트럭 뒤쪽에 맞불집회 장소가 가려져 있습니다.)

 

최근 윤석열정부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 한미일 군사 협력을 통해 미국 중심의 질서 아래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집권 세력은 일본과의 관계를 위해 과거사 문제는 꺼내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곳 평화의 소녀상으로 상징되는 위안부 문제도 그 중 하나이고, 이러한 문제를 숨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 투쟁에 참가하는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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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21시, <지통대> 단결의 밤

투쟁을 잘 마치고 나서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있는 건물로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서울본부가 이사했다고 하던데 건물이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전체가 강당에 모여서 조별로 인사를 하고, 다들 흩어져서 뒤풀이를 했습니다.

 

제가 있는 조는 출근 일정 때문에 귀가한 동지들이 꽤 있어서 다섯명 정도 소규모로 뒤풀이를 진행했습니다. 민주노조 선배 동지들과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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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10시, ‘효순미선평화공원’까지 행진하고 답사하다

둘째 날에는 7시에 일어나서 이동할 준비를 했습니다.

2시간 정도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효순미선평화공원’.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장소입니다. 이곳은 20년 전,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효순이, 미선이와 이로부터 이어진 투쟁의 기록을 담은 장소입니다.

‘효순미선평화공원’에 가는 길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버스에 내려 도로를 따라서 공원까지 걸어갑니다. 그렇게 걷다보면 도로 변에 공원이 나오는 데요. 바로 그 공원의 위치가 효순이, 미선이가 사망한 장소입니다. 공원을 답사하고, 조그맣게 결의대회도 열었습니다.

당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바탕으로 미당국은 결국 무죄 판결을 내렸고 가해 미군병사에 대한 처벌조차 하지 않아 대중적 분노를 일으켰고, 불평등한 한미 관계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 완공된 평화공원을 통해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계승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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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13시, 캠프모빌 둘레 행진 후 해단식

추모를 마친 이후에는 점심을 먹고 동두천의 캠프모빌 주변으로 이동하고, 버스에서 미리 내려서 이 캠프모빌 주변을 걸으며 해설사의 해설을 들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동두천에는 1952년부터 존재한 미군 기지인 캠프 케이시를 비롯해 전체 행정 구역 중 미군 공여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42%였다고 합니다.

다른 설명보다도 30년 전 이곳에서 있었던 미군 범죄인 윤금이씨 살해사건이 귀에 들어옵니다. 너무 잔인한 사건이라 글로 담지는 않지만 요점은 미군이 윤금이씨를 잔혹하게 살해했으며, SOFA 협정 때문에 한국 경찰이 구속하여 수사하는 등 제대로 주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는 것이 폭로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군 범죄는 아직도 매년 400건 씩 발생하고 있고, 솜방망이 처벌로만 끝나고 있어 한미관계의 불평등은 사실 그 자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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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 행진이 끝나고 캠프모빌 정문 주변에서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운이 좋게도 각 조별로 뽑는 모범대원에 뽑히기도 했는데 조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해산식은 모범대원들의 발언, 통선대 공동대장들의 발언을 듣고 끝내고, 캠프모빌 담벼락 아래 단체사진으로 1박 2일 간의 통선대 일정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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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 분단체제와 노동착취, 자본주의의 두 얼굴

7월 23일, 24일, 1박2일 간 진행된 <서울지역 노동자 통일선봉대>에서는 “불평등한 한미동맹, 미군범죄 폭로, 한미일 군사협력 반대”를 주요 구호로 투쟁에 나섰습니다. 첫째날에는 서울 주요 거점에서 집회, 행진을 하고 대시민 선전전을 하였고, 둘째날에는 미군이 일으킨 범죄와 관련된 장소인 효순,미선평화공원과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을 답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노동조합이 노동 문제 해결 외에 평화통일, 반미, 군사연습중단 구호같은 것을 외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대답으로서 정리되지 못했던 생각을 이번 소감에 작게나마 적습니다.

 

저는 분단체제에서 생기는 갈등과 노동자들이 겪는 억압과 착취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본주의로서 앞의 둘은 자본주의의 약간 다른 두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노동착취와 분단체제 모두에 반대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이유로 분단체제가 견고하고, 민족 갈등이 격화될 수록 노동 문제 해결은 어려워집니다. 최근 거제의 하청노동자 투쟁의 다른 한 편에서 정부가 이른바 ‘북송 어민’으로 북풍몰이를 시도하고, 경찰통제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배계층은 분단체제 아래에서 항상 안보프레임을 내세워서 내부 갈등을 잠재우고 억압하려고 시도하고, 또 그것이 잘 먹힙니다. 그래서 분단체제를 깨고 평화, 통일로 나아가야 노동 문제 해결의 큰 장애물을 치울 수 있고, 반면 분단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지금의 지배질서를 견고하게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두번째 이유로 자본주의적 질서를 약화시키지 않으면 분단체제도 마찬가지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앞서 분단체제, 북풍몰이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곧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이득을 보며 그 질서를 사수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동력 역시 자본주의적 힘으로부터 나옵니다. 때문에 노동자의 단결이 커지고, 견고하던 자본주의적 질서가 약화되는 것이 절실합니다.

 

자본주의, 더 나아가 제국주의 아래에서 우리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모든 민중들은 빼앗기고, 다치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거제 조선소에서 구사대의 폭력과 정부의 공권력 투입 협박을 받았던 것처럼, 효순, 미선, 윤금이가 미군에게 살해당했던 것처럼, 일제의 자본주의적 야욕에 전 인민이 유린당했던 것처럼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받아온 것입니다.

“운동은 중재자가 아니다. 분단고착화는 미제국주의 질서의 유지와 같다.”라고 했던 ‘조국통일촉진대회’의 한 구호를 통일선봉대에서 마음에 새겨봅니다.

 

동지들,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투쟁해나갑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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