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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인력양성 '주먹구구'

by 정진호 posted Feb 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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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인력양성 '주먹구구'

대학.대학원등서 한해 30만명 쏟아져

인력 남아돌아 파견직.다른분야 취업


몇년 전부터 정부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정보기술(IT) 인력양성 사업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오히려 고급 실업자들만 양산하고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정보기술 인력 양성에 직간접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부처만도 정보통신부, 노동부, 산업자원부, 교육인적자원부, 과학기술부 등 5개 부처에 이른다. 이들 부처는 산업현장에 대한 정밀한 조사도 없이 인력확대에만 주력해 정작 업체들이 필요한 인력은 없고 배출된 인력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인력수급 실태=지난해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이 배출한 정보기술 관련 학과 인력은 6만1900명에 이른다. 1998년 3만여명의 2배가 넘는다. 여기에 전문대(7만명)와 민간학원 등에서 배출되는 인력까지 합치면 한 해에만 30여만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이 부문에 많은 예산을 써온 결과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2002년말 4년제 대학과 전문대의 정보기술 관련학과 졸업생 취업률은 각각 52%, 72%에 이른다. 같은 해 비정보기술학과 평균 취업률 30~40%에 견주면 아주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교육통계연보의 취업률 조사는 졸업 당해년도에 각 학교들이 스스로 올리는 자료를 취합하는 형태여서 통계적 가치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정보기술 관련학과 졸업생 3천명을 대상으로 취업률을 조사해본 결과 졸업 직후 취업한 사람은 32%에 불과했다. 더욱 큰 문제는 상당수가 정보기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 취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원 조사를 보면 컴퓨터공학, 정보공학 등 정보기술 관련 학과를 나와 취업한 사람 가운데 2년4개월이 지난 시점에 전공과 관련된 직업에 취업하는 비율은 전문대가 22.5%, 4년제 대학이 40.7%에 불과했다.

■ 필요한 인력이 없다=졸업생들의 취업난을 부추기는 이유는 업체들이 신규 채용보다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이 경력직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그만큼 이 분야의 인력이 남아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사장은 “낡은 기자재로 현재 쓰지도 않는 프로그램 언어 정도를 배워나온 대학 인력을 채용한 뒤 교육시켜가며 쓰겠다는 회사는 없다”고 말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은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웹마스터 등은 엄청 남아 도는데 그 분야의 인력만 벽돌 찍어내듯이 양산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인력이 남아돌면서 이 분야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정보기술 직종인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경우 상당수가 비정규직 파견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정규직 프로그래머와 웹디자이너 등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IT산업노동조합연맹’ 전진호 위원장은 “정부에 정보기술 업체로 등록된 많은 업체들은 단순히 시장에서 인력을 조달해 대주는 인력파견 하청 업체들”이라며 “파견을 나간 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들은 보험혜택도 받지 못하고, 엄청난 노동량과 박봉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그는 “월 70만원 받고 두서너달 일했지만 그 돈마저 제대로 못받고 나왔다고 하소연하는 웹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유망한 직종이라고 생각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학원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웠지만 몇달째 직장을 못구해 처지가 딱한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소장은 “업체들이 쓸만한 사람이 없다며 정규직을 뽑지 않고, 비정규직이 많은 시장에서는 프로그래밍 능력은 물론 설계와 컨설팅 경험 등을 두루 갖춘 고급 인력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인력양성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는 18일 그동안 진행해온 대학 정보기술 학과 정원 확대 사업과 민간학원 지원 사업 등 양적인 인력 양성사업을 전면 중단하는 한편 질적인 인력양성 사업에 올해 1300억원을 쓰겠다고 뒤늦게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노동부는 여전히 민간학원에 수강료를 대주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등 부처간에 통합된 체계적인 인력양성 계획이 없고 인력수급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마저 없는 상황에서 효과를 보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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