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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보통신운동의 발전과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역할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정식 발족 이후 주요 활동 영역 뿐 아니라 문제의식도 계속 변화해 왔다. 외적으로 정보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네트워크 환경이 급변했고 내적으로도 정보화에 대한 대응이 심화,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설립 초기부터 2년 동안은 기술적으로 안정하는데 집중하였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환경의 확산에 맞춰 PC통신 참세상을 웹기반으로 전환하고 참세상 방송국 서비스를 시작하여 인터넷 방송을 사회운동 진영에 소개하였다. 또 정책실을 신설하여 정보화를 비판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 사회운동 정보화 지원과 독립네트워크의 전망

정보통신기술과 네트워크 인프라의 발전, 확산 속도는 무척 빠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인터넷의 활용 방식도 빠른 변화를 겪어 왔다. 사회운동의 '독립네트워크'라는 취지로 출발한 진보네트워크의 서비스와 활동 내용도 변화를 겪어 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설립된 1998년의 네트워크 환경은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등 상용 PC통신 서비스가 지배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접속(PPP 서비스) 서비스가 상용화되었지만 당시에는 소수의 단체만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과 2~3년 만에 초고속통신망이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고 다음, 프리챌 등 '웹 커뮤니티'가 PC통신 서비스를 대체하였다. 단체들의 홈페이지 제작과 활용이 급속하게 증가하였고 커뮤니티 형태로 조직된 이슈 그룹이 늘었다. 인터넷 대역폭의 확대와 함께 음성,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의 활용도 증가하였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러한 기술적 변화와 무관할 수 없었다. 초기 진보네트워크 서비스는 PC통신 중심이었는데 당시 사회운동 진영은 상업통신망을 주로 이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활동 초기에는 사회단체에 독립적인 PC통신 '참세상'을 활용할 것을 설득하며 진보네트워크 활용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1999년 초에 있었던 지하철 총파업 등 주요 투쟁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면서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진보네트워크의 존재 의의를 보여주고자 하였고, 결국 1999년 초에 '나우누리'에 있던 민주노총 CUG를 '참세상'으로 이전하면서 참세상 이용자가 급증하였다. 하지만 참세상이 유무료로 다양한 정보제공자를 유치하고 있었던 상업통신망과 경쟁하는 것은 역부족이었고 나우누리 진보동호회 회원들이 민주노총 CUG 이전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여만에 기술적 여건이 크게 변화하였다. 인터넷이 확산되었고 단체들의 홈페이지 개설이 증가하면서 진보네트워크 서비스도 웹 중심으로 변화하였다. 진보네트워크 홈페이지가 '사회운동 포털사이트'의 개념으로 재 구축되고 웹호스팅 서비스의 비중이 커졌으며 PC통신 참세상은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웹기반의 '커뮤니티'로 전환되었다.
진보네트워크의 운영은 사회운동 내에서 독자적인 물리적 기반, 즉 독립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차적인 중요성은 역시 정부나 기업의 검열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진보네트워크는 줄곧 수사기관으로부터 이용자의 개인정보 제공을 요구받아 왔다. 혐의사항도 없이 맑스주의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일괄적으로 내달라고 요구했던 적도 있었다. 또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검열기구는 진보네트워크 내 게시물의 삭제를 요구해 왔지만 진보네트워크는 이런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진보네트워크가 이런 감시와 검열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운동의 힘으로 설립하고 운영해온 독립네트워크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 전통이 강한 국내 시장 환경에서 상업적인 서비스로는 사회운동 진영을 위해 이런 요구들을 거절하기 힘들다.
두 번째로, 사회운동 친화적인 독립 네트워크 기반은 사회운동 진영이 상업적 서비스의 범위를 넘어서 보다 풍부하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상업적 웹호스팅업체에서 서비스되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폐쇄된 경우 진보네트워크가 피난처를 제공하거나 이슈를 위해 개설되었는데 가처분 소송 등 법적 강제의 대상이 된 경우 미러링(복제) 사이트를 구축하기도 했다. 또 진보달력이나 게시판 등 사회운동의 요구에 특화된 기술을 개발하거나 메일링리스트처럼 수익성이 없어 상업적으로는 제공되지 않는 서비스를 발굴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독립네트워크가 진보네트워크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현재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등 규모가 있는 사회단체의 경우 독자적인 서버를 운영하고 있고, 전주(http://inp.or.kr)나 인천(http://saramdl.net)의 경우 지역의 정보통신운동 단체가 사회운동을 위해 서버를 제공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여기서 독립네트워크의 의미는 단지 '서비스의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확대되고 사용 인구가 늘면서 서비스를 제공받거나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독립네트워크보다 대규모 상업적 서비스가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 독립네트워크의 존재 의의는 기술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운동 독립네트워크는 사회운동의 대의라는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실용적인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수많은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이 중첩해 있다. 각 단체 홈페이지는 단지 매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이 매체 자체를 어떤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원칙에 따라 운영하는가가 우리 사회 민주성의 척도가 된다 할 것이다.

2) 참세상 방송국과 대안 미디어 운동

2001년 4월 10일 대우자동차 조합원들에 대해 경찰이 감행한 살인적인 폭력이 인터넷을 통해 고발되었다. 순식간에 퍼져나간 디지털 영상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주류 언론이 모두 빠져나간 현장을 지키고 있다가 이 폭력 사태를 고발한 것은 참세상 방송국을 비롯한 '2001 대우차 총파업 투쟁 영상중계단'이었다. 이 사건은 독립적인 영상운동과 인터넷의 결합이 주류 언론이 독점하고 왜곡해 온 미디어 질서에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사회운동은 전통적으로 미디어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주장하는 바를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배포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미디어 질서는 소수의 미디어 자본에 의해 독점되어 민중에 배타적이었다. 사회운동 진영은 이러한 독점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자체적인 소식지나 기관지를 발행하는 것은 물론 힘을 합쳐 보다 진보적인 정기간행물을 창간하기도 하였다. 해외의 경우 독립적인 라디오나 위성 방송국을 건립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 진영이 독립 미디어를 확보하는 데 있어 한정된 유통망과 높은 비용은 큰 장벽이었다.
1980년대 등장한 인터넷은 곧 사회운동의 강력한 대안 미디어로 부상했다. '총파업통신지원단'은 주류 미디어가 외면했던 노동계 주장을 상세하면서도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독립적이고 대안적인 미디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진보네트워크는 1998년에 개최된 '서울국제민중회의' 실업자대행진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시험 방송을 거쳐 1999년에 '참세상 방송국'을 설립하였다.
인터넷 이용이 확산되고 접근이 용이해지면서 다양한 인터넷 언론이 생겨났다. '딴지일보'로부터 시작해 '대자보', '오마이뉴스' 등 정치적 인터넷 언론이 늘었고 '노동의 소리', '민중의 소리' 등 진보적 인터넷 방송국도 차례로 등장했다. 이러한 인터넷 언론은 인터넷 게시판과 연동되어 적극적인 정치 토론의 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2002년 초반에 화제가 되었던 '노사모' 열풍도 일견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직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참세상 방송국은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 민중과 함께 한다는 나름대로의 보도 색채를 강화하면서 독자적인 보도나 투쟁 영상을 늘여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인터넷 방송에 대한 적응과 실험에 그치고 있다. 진보적 사회운동에 있어 '노사모', '촛불시위'와 같이, 대중 조직과 여론 형성에 이르는 적극적 전략이 연구될 필요가 있다.

3) 정보화에 대한 비판적 대응

기술은 단지 기술만이 아니다. 기술 또한 정치의 산물이며 정치의 대상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정보화에 비판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다양한 관심을 가진 대응 단위를 조직해 왔다.

내용규제와 표현의 자유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끊이지 않는 것이 인터넷 검열에 대한 논란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근대국가의 미디어 통제의 연장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라 하겠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표현의 자유는 선언되었으되, 그 권리를 누리는 것은 민중이 아니었다.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물적 수단이 주로 부르주아 언론과 출판 권력에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명 이후 비로소 누구나 스스로 자유로이 표현하고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편집자에 의해 선택되는 엄격한 사실 정보와 투철한 예술혼만이 '표현'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아래로부터 직접 생산되는 정보들, 그런 만큼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힘들고 가볍고 거친 표현도 제각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날 것 그대로의 표현'을 만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인터넷 등장 초기서부터 정부가 이를 강하게 규제해 왔다. 특히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불온정보'를 중심으로 인터넷을 규제해 왔다. 그러나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자퇴청소년 커뮤니티 '아이노스쿨'을 폐쇄하면서 사실 그 취지는 실제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윤리적 통제라는 것이 드러났다.
정보통신부는 2000년 7월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에 '등급'을 매기는 정도의 외양을 띄고 있었지만 무엇이 등급 대상이고 아닌지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결정하며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네티즌·사회단체와 사이트 파업, 60일 릴레이 단식농성을 통해 이에 격렬히 저항하여 이를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2002년에 들어 보다 광범위한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인터넷국가검열반대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가 발족하여 인터넷 검열에 대응하고 있다.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지난 2002년 6월 큰 전기를 맞았다. 헌법재판소에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불온통신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내용규제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역시 문제의 핵심은 국가보안법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국가보안법이 직접 통신에 적용되는 경우가 늘었다. 전지윤, 김강필씨가 인터넷에 올린 자료 때문에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건국대 김용찬, 김종찬씨가 비정규직 운동 등 사회과학 자료집을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리거나 소지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7조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 자료집은 대부분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 사이트로부터 내려 받아 발췌, 편집하거나 그대로 게재한 것이었다.(다음 호에 계속)

2003-12-19 18: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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