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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과 정보 공유

지적재산권이 사회운동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은 80년대 말부터 세계무역기구(WTO)나 쌍무협정을 통하여 지적재산권을 세계적으로 장악하려고 각국에 압력을 행사해 왔으나 이에 대한 국내의 비판적 여론은 미미했다. 그러나 지적재산권에 의한 불평등과 인권 침해가 늘면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증가했다.
지적재산권은 애초에 창작자에게 인센티브와 보상을 하기 위한 제도로 출발하였으나, 최근의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지적재산권의 소유자가 개인에서 기업으로 변화하면서 기업의 독점과 투자를 보장하는 제도가 된 것이다. 일본이나 신흥공업국의 시장점유율이 확대되자 이와 경쟁하는 선진국 기업들이 기술 독점을 더욱 강하게 추구하게 되었고, 프로그램, 영화, 게임 등 지구적 지식, 문화산업이 확대되면서 저작권의 지구적 관철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적재산권의 최근 경향은 그 보호대상의 확대, 새로운 권리의 창설, 그리고 지적재산권 행사의 공격성 심화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 인프라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정보공유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면서 인터넷이 저작권 제도와 충돌하는 사안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인터넷 비지니스 방법에 대한 특허권 문제, '소리바다'를 둘러싼 저작권 논쟁, 디지털콘텐츠보호법안이나 디지털 도서관 기능의 제한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제3세계의 경우 에이즈 치료약 등 의약품 특허를 무기로 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착취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에 대한 특허를 강제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운동 진영과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 간에 논쟁이 벌어져 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여러 사회단체와 함께 지적재산권이 정보의 공정한 이용과 생명권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 대응해 왔다.

감시와 프라이버시

최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투쟁으로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 의식이 크게 진작되었다.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개인간의 소통과 가상 거래를 증가시켰지만, 이는 자신의 가상 존재를 노출시키면서 확보한 신뢰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즉 정보사회의 일상이란 것이 자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통과 투명화가 불균등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불평등한 권력 관계망 속에서 감시하는 자는 점점 더 드러나지 않고 감시받는 자만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보사회의 감시 문제는 과거보다 복잡하다. 독재권력처럼 노골적으로 감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감시 메커니즘을 통해 개인들의 행위가 규율화되기 때문이다. 누가 보는지도 모르는 채 감시 카메라를 의식하여 자신에게 요구되는 규율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국가적인 수준에서 뿐 아니라 민간 영역에서의 감시와 통제도 확산되고 있다. 이는 현실 정보사회의 확장 속에서, 개인정보가 비즈니스의 중요한 수단이자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의 데이터베이스망은 생체 인식이나 스마트 카드와 결합하여 개인의 일상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또한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을 CCTV나 이메일 모니터링을 통해 감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노동 통제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전자적 감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감시의 효과를 크게 증대시켰다.
한국 사회에서 프라이버시권은 주민등록제도에 저당 잡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 국민이 만17세가 되면 열손가락 지문날인과 더불어 주민등록제도에 편입되어 평생동안 국가 권력에 의해 '관리'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주민등록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제기는 전자주민카드에 대한 반대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최근의 지문날인 반대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9.11 이후 최근 국제적으로 범죄와 테러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감시가 크게 급증하였다. 감시는 감시받는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 뿐만 아니라 행동의 유형과 사상까지도 파악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감시로 수집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이를 관리와 통제의 수단으로 삼을 경우, 개인은 데이터베이스에 의하여 범주화된다는 것이다. 범주화는 구별의 근거가 되고 이로 인해 차별과 배제가 파생한다. 예를 들어 입학이나 입사때 개인이 제공하는 인종, 출신지역, 성별 등의 개인정보가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보다 더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따라서 프라이버시권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데서 더 나아가, 감시가 민주주의와 인권에 끼치는 위협에 보다 구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프라이버시권을 기본권답게 구체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통합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기본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인터넷의 민주적 운영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인터넷 환경 내에서 인터넷의 활용에 주로 관심을 갖지만, IP 주소의 분배, 도메인 네임의 생성 및 할당, 인터넷 규약의 결정 등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IP 주소는 선진국에 치중되어 분배되어 왔으며 도메인 네임은 상표권을 가진 기업에 우선권이 주어지고 있다. 도메인 네임이 '영어'라는 것 또한 타언어 국민들의 인터넷 접근에 장벽이 된다.
인터넷 정책은 안정성이 강조되는 기술적 특성상 한번 결정되면 돌이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어진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구조와 운영의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서의 '민주성'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술자들과 세계 사회운동 진영은 인터넷의 의사결정 구조를 민주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국제적인 인터넷 관리 기구로 탄생한 것이 ICANN 이라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ICANN은 1998년 말 미 상무성과의 양해 각서에 의해 탄생되었는데, 특이한 것은 여타의 국제기구처럼 정부간 기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참여가 열려있는 민간기구라는 점이다. '.kr' 과 같은 국가 도메인들도 각 국의 인터넷 공동체에 위임되어 관리되게 되는데, 대부분 정부가 일방적으로 운영하기보다는 민·관·상의 합의구조에 의해 운영된다. '.kr'의 경우도 현재 비영리 재단법인인 한국인터넷정보센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ICANN이 표방하고 있는 '열린 참여'와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이라는 지향점과 현실간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ICANN에서 현실적인 참여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제1세계 기업 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인프라가 확산되고 사회경제적인 중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반면 이용자와 사회단체들은 제대로 조직화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가 KRNIC과 ICANN 등 인터넷 거버넌스 구조를 정부 주도적인 구조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또 '.tv'나 '.to' 같은 제3세계 국가 도메인은 민중의 공공 자산임에도 도메인 관리자가 그 권리를, 거액의 댓가를 받고 초국적 기업에 넘기는 일이 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연재를 마치며

그간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자본 주도의 정보화가 도도하게 진행되는 현실에 비해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비롯한 한국 정보통신운동의 활동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정보화와 결부되어 발생한 제반 문제들은 정보화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존부터 존재해 왔던 고질적인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 모순의 뿌리가 깊다. 공기업의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들 사이에서 인프라의 운영처럼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할 영역은 시장화되어 가고, 반면 내용 규제나 인터넷의 운영 분야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과거보다 강화되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향후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정보통신운동의 일차적 전망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 전반의 전망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화에 대한 사회운동 진영의 인식과 대응 또한 일정하게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정보화 기술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술에 대해 실용적으로만 판단할 때는 탈정치화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물론 기술에 대해 정치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고 개입하려는 노력은 때로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효율을 낳는 것이 사실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활동가들도 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해 왔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인터넷 방송을 위해 윈도와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라는 특정한 기술에 대한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 초국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지구적 독점 체제와 무관할까? 기술은 우리가 현재 주어진 사회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활용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그 사회 관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일찍이 해리 브레이버맨은 테일러주의를 비판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발달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노동과정과 관련 있는 과학기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관계의 산물로서의 기술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그러한 긴장 속에서 기술적 실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게시판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인터넷에는 사회운동 내부를 향한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생존 문제가 극단에 몰리면서 여성·장애인·이주 노동자·비정규직 등 소수자 운동이 조직되어 왔고 그에 따라 사회운동 진영의 단일한 대오에 일정한 긴장이 발생하고 있다. '100인 위원회'의 운동사회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으며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가부장성에 대한 여성 노동자의 고발이 2001년 인터넷에서 부활했다. 오늘도 수많은 논쟁이 인터넷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래서 게시판에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는 활동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논쟁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피해가서도 안되는 것이다. 논쟁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끝은 인터넷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를 향한 듯이 보이는 이 칼날들은 결국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킬 것이다. 이러한 믿음 속에서만 우리는 인터넷의 민중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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